언론계 공동 '공인 보도준칙' 11월 나온다

2026-10-12

공직자와 유명인을 다루는 언론 보도에서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 보호의 경계를 정하는 언론계 공동 기준이 마련된다. 법적 구속력은 없는 자율규범이지만, 그동안 기준이 없어 생긴 취재 현장의 혼선과 소송을 줄이는 데 참고할 최소한의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지난 7일 서울 중구 정동 미디어교육원에서 '공인 보도준칙' 제정 공청회를 열고 준칙 초안을 공개했다. 초안 작업에는 언론재단과 한국기자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인터넷신문협회,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인터넷신문윤리위원회 등 6개 단체·기관이 참여했다. 대법관 출신인 김재형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위원장을 맡은 전담팀이 지난 6월부터 넉 달가량 준비했다. 재단은 공청회 의견을 반영해 11월 중 최종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소송 결과 대상 따라 엇갈려

김 교수는 준칙이 필요한 이유로 공인 관련 명예훼손 소송의 편차를 들었다. 그가 분석한 2021~2023년 공인 유형별 명예훼손 소송에서 정치인의 승소율은 27.8%에 그친 반면 연예인은 90%에 이르렀다. 보도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법원이 공익성과 유명성, 자발성을 다르게 평가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현행 언론 자율규범은 공인의 개념을 분명히 정하지 않고, 인격권 보호에 대해서도 원론적 언급에 머물러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초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정 취지와 목적

초안 전문은 공인에 대한 보도가 국민의 알 권리를 실현하고 건전한 공론장을 지키는 언론의 책무라는 점을 먼저 밝혔다. 동시에 공인 역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닌 만큼 인격권이 보호돼야 하며, 이 때문에 공인 보도에서는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이 부딪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기준이 불분명한 탓에 현장의 혼란과 언론 신뢰 하락이 이어지고 있어 6개 단체가 실무 경험과 법리 분석을 바탕으로 준칙을 만들었다는 것이 제정 배경이다. 제1조는 준칙의 목적을 공인 보도에서 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인격권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자율기준 마련으로 규정했다.

공인의 정의

제2조는 준칙의 핵심 용어를 정의했다. 적용 대상인 '언론'은 방송, 신문, 잡지 등 정기간행물과 뉴스통신, 인터넷신문을 포괄한다. '공인'은 사회적 지위와 역할, 영향력에 비춰 보도할 이익이 큰 사람이나 단체로, 크게 두 유형으로 나뉜다. 

하나는 공직자와 공직선거 후보자 또는 출마 예정자, 인사청문회법상 공직후보자처럼 중요한 공적 역할을 맡을 예정인 사람, 그리고 스스로 공적 지위를 얻거나 공적 활동을 하는 사람·단체다. 

다른 하나는 본인 의사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영향력이 크거나 관심 대상이 된 사람·단체로, 초안은 이를 '유명인'으로 따로 지칭했다. 김 교수는 발제에서 공직자와 함께 연예인, 재벌 등을 자발적 공인의 예로 들었다. 공인 판단의 핵심 기준은 이처럼 '자발성'이다. '인격권'은 생명·자유·신체·건강·명예를 비롯해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초상, 성명, 음성, 대화 등 인격적 이익 전반에 관한 권리로 폭넓게 정의했다.

 보도 허용·제한 영역

초안은 표현의 자유가 인격권보다 앞서는 경우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공인의 공적 지위나 활동을 대중이 아는 것이 사회에 이익이 되는 경우, 유명인의 영향력이 커서 이를 평가할 자료로 공개가 필요한 경우, 대중의 정당한 관심에 부응하는 유명인 보도인 경우다. 반대로 공인이라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다룰 수 없는 영역도 명시했다. 신체적·정신적 질병과 치료 이력, 성적 지향이나 성관계, 주거지 위치·주소와 병원 등 머무는 장소 같은 내밀한 사생활이 대표적이다. 보도 방식 역시 건전한 상식의 범위를 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비공인 보호와 반론·정정

범죄 혐의자와 피해자, 재난·사고 관련자와 피해자, 공직자·유명인의 가족·친척·연인처럼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주목받게 된 사람은 공인 보도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언론은 이들에 대한 보도에서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주의해야 한다. 절차적 보호 장치도 담겼다. 보도에 앞서 서면·전화·이메일·면담 등으로 당사자에게 반론 기회를 주고 이를 반영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중대한 오류가 확인되면 신속히 정정해야 한다.

 현장 "너무 추상적"

토론에 나선 현업 기자들은 기준의 모호성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더팩트 남용희 사진기자는 재판에 나오는 국무위원의 배우자나, 반복 보도로 유명해진 일반인 등의 사진을 모자이크해야 할지 초안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렵다며 공인 주변 인물에 대한 구분을 더 분명히 해달라고 요청했다.  JTBC 탐사보도 담당 이윤석 기자는 준칙이 늦게나마 마련된 데 의미를 두면서도, 후배 기자들 사이에서 원론적이라 실효성이 의문이라는 반응이 나왔다고 전했다. 그는 영국 BBC처럼 상황별 대응을 상세히 담은 공동 가이드라인이 뒤따라야 하며, 반론 기회도 최소 하루 이상은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준칙이 오히려 보도를 움츠러들게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김선호 언론재단 책임연구위원은 전체 기조가 인격권 보호 쪽에 무게를 싣는 신호로 읽힐 수 있다며, 준칙 형태가 적절한지 아니면 자율심의 기구의 심의규정으로 활용하는 편이 나을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심의기구 관계자들은 준칙 자체는 선언적 수준으로 두고 구체적 판단은 사례집으로 보완하자는 데 무게를 실었다. 박영례 인터넷신문윤리위원회 기사심의실장은 준칙을 지나치게 세밀하게 만들면 자기검열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고, 현창국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심의실장은 이번 준칙을 출발점으로 보고 현장이 쉽게 참고할 사례집 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주성 한국일보 온라인총괄부문장은 준칙이 공인을 보호하는 장치가 아니라 언론 스스로 잘못된 취재 관행을 고치는 수단이 돼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여러 차례 개정을 거친 자살예방 보도준칙처럼 공인 보도준칙도 지속적으로 손질해 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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