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저널리즘...전자책 무료 공개

2026-10-14

생성형 AI가 뉴스의 생산과 유통, 소비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가운데, 저널리즘이 이 변화를 어떻게 맞아야 하는지 묻는 책이 나왔다. 미국의 저널리즘 연구자 세 명이 함께 쓴 《Journalism in the Age of AI: From Acceleration to Reimagination(AI 시대의 저널리즘: 가속에서 재상상으로)》이다.

전자책 무료 공개, 종이책은 11월 영국·내년 1월 미국 출간

책은 영국 학술출판사 폴리티(Polity Press)의 ‘AI & Society’ 시리즈로 나왔다. 전자책은 2026년 8월 3일 발행됐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C BY-NC-ND 4.0) 라이선스가 적용됐다. 누구나 공식 웹사이트(journalismandai.com)에서 신청하면 전문을 무료로 받을 수 있으며, 아마존 킨들판도 판매 중이다. 종이책은 영국에서 11월, 미국에서 내년 1월 배송이 시작된다. 

저자들은 누구인가

대표 저자 세스 C. 루이스는 버지니아대학교 AI·미디어학 석좌교수다. 그 전에는 2016년부터 오리건대학교 저널리즘 디렉터이자 신흥미디어 석좌교수로 재직했다. 컬럼비아대 토 센터, 예일대 로스쿨 정보사회 프로젝트, 옥스퍼드대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등에서 펠로로 활동했고, 2020~2022년에는 세계 최대 저널리즘 연구자 모임인 국제커뮤니케이션학회(ICA) 저널리즘연구분과 회장을 지냈다. 로드리고 자미스는 매사추세츠대학교 앰허스트 저널리즘학과 부교수로, 학과장을 지냈다.  토마스 도즈는 위스콘신대학교 매디슨 저널리즘·매스커뮤니케이션 조교수이자 퍼블릭 테크 미디어 랩(Public Tech Media Lab) 소장이다. 하버드대 버크먼 클라인 인터넷·사회 센터의 협력 연구원도 맡고 있다.

'햄스터 쳇바퀴'에서 내려올 기회

책의 핵심 비유는 '햄스터 쳇바퀴'다. 저자들은 디지털 전환 이후 기자들이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이 생산하라는 압박 속에 쳇바퀴를 돌려왔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AI가 지금처럼 쓰이면 수십 년간 기자와 대중의 신뢰를 갉아먹어 온 망가진 시스템을 오히려 더 빨리 돌리게 될 뿐이라고 경고한다. 다만 AI는 사람이 직접 그 일을 해야 한다는 전제 자체를 흔들기 때문에, 저널리즘이 스스로를 다시 정의할 '구성적 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책의 출발점이다.

6개 장으로 본 책의 구성

1장 '저널리즘의 구성적 순간'은 뉴스룸 자동화의 역사를 세 차례 물결로 나눠 정리한다. 매번 과장된 기대와 혼란스러운 도입이 반복됐고, 그 끝에 창작과 인지 영역까지 파고든 생성형 AI가 있다. 저자들은 AI가 기술만이 아니라 문화와 제도, 선택의 산물이므로 저널리즘이 여전히 그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2장 '가속하는 뉴스룸'은 AI가 기획부터 유통까지 뉴스 제작 전 과정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살핀다. 저자들은 ‘AI가 기자를 대체하느냐'는 질문이 핵심을 놓친다고 본다. 대신 AI로 무엇을 더 빨리 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새로 할 수 있게 되느냐를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장 사례도 풍부하다. 미국 비영리 매체 캘매터스(CalMatters)는 캘리포니아 주의원 관련 데이터를 AI로 추적해 기사 아이디어를 뽑아내는데, 데이터에 능한 정치부 기자가 몇 주에서 몇 달 걸려야 찾을 만한 단서들이 나왔다. 실패 사례도 있다. 2023년 독일 잡지 디 악투엘레(Die Aktuelle)는 2013년 사고 이후 공개 발언이 없던 F1 전설 미하엘 슈마허의 '첫 인터뷰'를 실었는데, AI가 지어낸 가짜였다. 결국 편집장이 해고되고 슈마허 가족과 배상 합의까지 했다. 2024년 12월에는 애플 인텔리전스가 BBC가 보도하지 않은 내용을 BBC 뉴스 알림인 것처럼 잘못 요약해 띄웠다. BBC는 그 오류에 누가 얼마나 노출됐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보도자료를 읽는 AI, 보도자료를 쓰는 AI

PR 업계가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보도자료와 기업 데이터가 AI 뉴스 생산의 재료가 되는 장면들이다. 저자들은 1장에서 뉴스가 언론인에게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며, 기업 보도자료도 뉴스를 실어 나르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짚는다.

2장 '기사 소재 찾기' 대목은 이 흐름이 이미 뉴스룸 안에 들어왔음을 보여준다. 일부 뉴스룸은 AI로 경쟁사 기사, 보도자료, 소셜미디어, 검색 트렌드를 훑어 정해진 틀에 맞는 기사 소재를 찾아낸다. 저자들은 이를 위험이 낮고 뉴스 가치가 확실한 소재를 찾는 일의 자동화로 평가한다. 다만 한계도 분명히 한다. 기사 소재를 고르는 AI가 기자의 기존 판단을 되풀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롭고 가치 있는 방향을 가리키게 만드는 것은, 패턴 중심으로 설계된 현재 AI로는 쉽지 않은 과제라는 것이다.

보도자료와 기업 데이터를 기사로 바꾸는 자동화의 원조는 AP통신이다. AP는 2014년 오토메이티드 인사이츠와 손잡고 기업 실적 기사를 자동화했다. 분기마다 기자가 직접 쓰던 약 300건의 실적 기사는 약 3,700건으로 12배 늘었고, 기자들이 실적 기사에 쓰던 시간은 약 20% 줄었다. 2018년 출범한 로이터의 '링스 인사이트(Lynx Insight)'는 다른 길을 택했다. 완성된 기사를 쓰는 대신 방대한 데이터에서 추세와 이상 징후, 뉴스거리를 찾아 담당 기자에게 알려주는 방식이다.

저자들은 앞으로의 변화도 내다본다. AI가 질문에 답하는 챗봇을 넘어 스스로 과제를 수행하는 '에이전트'로 진화하면, PR 업무 전체가 자동화될 수 있다. "신제품 출시를 기획해 달라"는 요청 하나로 AI 에이전트가 시장 데이터를 수집·분석하고, 보도자료 초안을 쓰고, 연락할 기자를 찾고, 배포 일정을 잡는 일까지 사람의 지시를 최소화한 채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디어 권력, 민주주의, 교육, 그리고 재상상

3장 '미디어 권력의 새로운 구조'는 미디어 권력이 신문사와 방송국을 누가 소유하느냐에서, 기술과 클라우드 인프라, 유통 시스템을 누가 쥐고 있느냐로 옮겨갔다고 분석한다. 저자들은 소수의 거대 AI·테크 기업이 저널리즘의 '건물주'가 됐다고 표현한다. AI 답변 엔진이 확산되고 검색 유입이 사라지면서 언론사와 독자를 잇는 경제적 생명줄이 끊기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광고 수입만이 아니다. 운영 인프라가 남의 것이 된 상황에서 편집 독립성과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지킬 수 있느냐가 걸려 있다. 자미스 교수도 한 인터뷰에서 더 큰 위험은 AI가 기자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뉴스를 지탱하는 경제 기반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4장 '민주주의를 위한 AI 설계'는 AI가 대중의 이해, 숙의, 참여라는 민주주의의 세 차원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다. 저자들은 실리콘밸리의 탐욕적 자본주의와 베이징의 권위주의적 통제라는 지배적 논리가 민주주의를 강화하기보다 부식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를 바꾸려면 민주적 목표에 복무하는 AI를 의도적으로 설계해야 하며, 이는 저널리즘만의 과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5장 ‘AI 시대에 생각하는 법 배우기'는 저널리즘 교육을 시험대로 삼는다. 많은 대학이 AI를 주로 '부정행위' 문제로 다루는데, 저자들은 이것이 본질을 놓친다고 비판한다. 진짜 질문은 학생들이 아는 것 같다고 '느끼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알게 되도록 교육이 도울 수 있느냐는 것이다.

6장 ‘AI 시대를 위한 저널리즘의 재상상'은 지금의 궤도가 네 가지 암울한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저널리즘의 고유성을 잃는 탈전문화, 빅테크로의 인프라 포획, 공론장의 약화, 인간 판단력의 위축이다. 저자들은 이를 꿰뚫는 공통점을 '인식의 얇아짐', 즉 정보를 안다고 느끼는 것과 실제로 아는 것 사이의 간극이 벌어지는 현상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쳇바퀴가 숙명은 아니라고 말한다. 기자, 언론사, 교육자, 정책 입안자, 시민이 지금 내리는 결정이 앞으로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방향으로는 공동체가 실제로 필요로 하는 것에서 출발하자며 접근성, 허위정보 대응, 초개인적 관련성, 대화형 유연성을 목표로 제시한다.

세계 저널리즘 연구자·업계의 평가

책에는 저널리즘 연구와 업계를 대표하는 인사들의 추천사가 실렸다. 런던정경대(LSE) 교수이자 저널리즘AI(JournalismAI) 프로젝트를 이끄는 찰리 베킷은 이 책이 AI를 둘러싼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 양쪽의 과장을 걷어낸 차분한 분석이라고 평가했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장을 지낸 라스무스 클레이스 닐센 코펜하겐대 교수는 AI를 도구나 위협으로만 보지 말고, 저널리즘이 무엇이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새롭게 답할 기회로 보자는 초대라고 했다. 세계신문협회(WAN-IFRA)의 에즈라 에만 AI 미디어 디렉터는 이 책이 쉬운 답을 주지는 않지만 더 나은 질문을 던지게 한다고 평했다. 《자동화된 뉴스(Automating the News)》의 저자 니콜라스 디아코풀로스 노스웨스턴대 교수, 《약탈적 AI(Predatory AI)》의 저자 닉 쿨드리 LSE 교수, 빅터 피커드 펜실베이니아대 교수 등도 추천사를 썼다.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인도 과학 저널리스트가 운영하는 블로그 '슬라이틀리 애시딕(Slightly Acidic)'의 서평은 책의 문제의식에는 동의하면서도 독자의 필요를 앞세우는 접근의 한계를 지적했다. "우리 집 수돗물은 안전한가"라고 묻는 독자에게 확인 방법만 알려주면 그만이 아니라, 왜 물이 오염됐는지, 누구 책임인지, 어느 지역이 피해를 입었는지까지 밝히는 것이 저널리즘의 몫이라는 것이다. 또 AI 기업과의 라이선싱 계약 같은 해법은 AI 대기업과의 상업적 관계 안에서 더 나은 조건을 얻으려는 시도일 뿐, 그 관계에서 벗어나려는 것은 아니라고 비판했다.

한국 언론에 던지는 질문

국내에서는 월간 신문과방송 10월 8일자 북리뷰에서 이혜림 고려대 미디어대학 교수가 이 책을 소개했다. 이 교수는 포털 중심 뉴스 소비와 낮은 언론 신뢰라는 한국의 특수한 환경을 짚으며, 미국 사례만으로는 한국 언론이 겪을 변화를 설명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또 한국 언론이 AI 기업과의 관계에서 실질적 '협상력'을 갖추려면 정부와 시민사회, 이용자가 함께 공공 정보의 생산과 보호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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