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퓰리처상 저널리즘 부문 수상작 16건 가운데 5건, 최종 후보작 31건 가운데 3건이 AI 활용 사실을 공개했다. 모두 8건으로, 공개 의무가 생긴 2024년 이후 가장 많다.

퓰리처상은 헝가리계 미국인 언론인 조셉 퓰리처의 유언에 따라 그가 남긴 50만 달러를 기금으로 1917년에 만들어졌다. 현재 저널리즘 15개 부문과 도서·드라마·음악 8개 부문에 걸쳐 상을 준다. 권위와 신뢰도가 높아 '미국 기자들의 노벨상'으로 불린다. 한 세기 넘게 전통을 지켜 온 이 상에서도 생성형 AI가 취재 도구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최근 펴낸 '2026 해외 미디어 동향' 비정기호에서 이런 흐름을 다뤘다. 재단은 하버드대 니먼 저널리즘 재단 산하 니먼랩의 앤드류 덱 기자가 8월 초 쓴 분석 기사를 전문 번역해 싣고, 덱 기자와 한 별도 인터뷰도 함께 수록했다.
퓰리처상은 2024년부터 저널리즘 부문 출품작에 AI 사용 여부를 밝히도록 하고 있다. 첫해에는 최종 후보작 45건 가운데 5건이 AI 사용을 공개했고, 이 중 2건이 상을 받았다. 2025년에는 4건이었고, 올해는 두 배인 8건으로 늘었다. 지난 2년 동안은 위성사진 분석이나 데이터 시각화 같은 전통적인 머신러닝 기술이 주로 쓰였다. 올해는 대량의 문서를 빠르게 훑어보는 데 범용 대규모언어모델(LLM)을 쓰는 사례가 많아졌다.
문서 더미에서 단서 찾기, 번역, 교차 검증까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25년 여름 텍사스 커 카운티 홍수를 취재하면서 카운티 웹사이트의 회의록·안건·녹취록을 자동으로 모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렇게 모은 문서를 사내 LLM 도구로 요약한 뒤 과거 홍수 언급을 찾아냈다. 그 결과 10년 전 한 보안관이 경보 체계 강화를 건의했지만 실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보도는 속보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WSJ는 같은 방식을 엡스타인 파일 보도에도 썼고, 이 보도는 공공서비스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다만 홍수 기사에는 AI 사용을 따로 표기하지 않았다. AI는 문서를 찾아 주는 역할만 했고, 문서를 읽고 취재한 것은 기자였다는 이유에서다.
미네소타 스타트리뷴은 2025년 8월 미니애폴리스 성당 총격 사건 직후, 범인이 남긴 수백 쪽 분량의 일기를 분석했다. 일기는 영어를 키릴 문자처럼 바꿔 적은 일종의 암호였다. 취재진은 챗GPT로 60만 단어가 넘는 일기를 1차 번역하고, 구글 노트북LM으로 핵심 주제를 뽑았다. 중요한 구절은 러시아어 학자 두 명에게 따로 검토를 맡겼고, 이 과정에서 범행 동기를 잘못 옮긴 번역 오류도 찾아냈다. 이 보도는 속보 부문 수상작이 됐다.
AP통신은 미국 기술 기업들이 중국의 감시 체계에 기술을 공급해 온 실태를 파헤쳐 국제보도 부문 상을 받았다. 중국 감시 업체에서 유출된 이메일·데이터베이스 수만 건과 정부 기록·조달 문서 수천 건을 검색하고 정리하는 데 LLM을 활용했다. 다만 AI가 만든 요약은 기사에 그대로 인용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과 가상자산 업계의 이해충돌을 다룬 연속 보도로 탐사보도 부문 상을 받았다. 이 가운데 트럼프 재집권 뒤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가상자산 소송 60% 이상이 철회되거나 축소된 실태를 다룬 기사는 접근 방식이 달랐다. 기자들이 1만 건이 넘는 문서를 몇 달에 걸쳐 직접 읽고 분류했다. 오픈AI의 GPT-5는 그 작업이 끝난 뒤 결과를 교차 검증하는 데에만 썼다. 흔히 AI의 약점으로 꼽히는 오류 문제를 뒤집어, AI를 사람의 실수를 잡아내는 도구로 쓴 셈이다.
퓰리처상 이사회의 마저리 밀러 사무국장은 언론계가 자료 수집·분석처럼 적절한 AI 활용과 기사 작성·편집처럼 부적절한 활용을 예전보다 분명하게 구분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출품작이 결국 사람의 손으로 완성됐다는 점을 계속 입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퓰리처상은 내년부터 도서 부문 출품 양식에도 AI 사용 여부를 묻는 항목을 넣을 예정이다.
'어디까지 공개할 것인가'는 여전히 숙제
같은 도구를 써도 공개 여부는 언론사마다 달랐다. 덱 기자는 인터뷰에서 AI가 만든 글이나 이미지를 독자에게 알려야 한다는 데는 미국 언론계가 대체로 동의하지만, 취재 보조용 AI까지 공개해야 하는지는 아직 합의가 없다고 짚었다. 'AI' 표기가 독자의 오해를 불러 오히려 취재의 신뢰를 해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 공개 기준이 쓰임새에 따라 더 세분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재단은 한국 언론에도 같은 질문이 던져져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신문협회 등 6개 언론 단체가 2024년 공동으로 만든 '언론을 위한 생성형 인공지능 준칙'은 AI가 콘텐츠 생성에 직접 쓰였을 때는 표시하도록 한다. 반면 자료 조사·번역·데이터 분석 등에는 표시를 생략할 수 있게 했다. 퓰리처상 사례와 같은 구조다. 다만 '정보 처리'와 '핵심 분석'의 경계가 모호해, 공개가 원칙보다 편의에 따라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남는다. KBS도 2025년 8월 자체 AI 가이드라인을 만들었고, 세부 지침을 내놓을 계획이다.
재단은 이제 중요한 것은 AI를 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검증했는지와 무엇을 어떤 기준으로 공개하는지를 언론사가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느냐라고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