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가 바꾼 세계 저널리즘의 문법

2026-11-03

해외 주요 언론은 기후를 환경팀만의 일이 아니라 뉴스룸 전체의 과제로 다루기 시작했다. 『신문과방송』 2026년 11월호 커버스토리에서 하재식 일리노이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과 교수가 정리한 사례를 언론사별로 살펴본다.

배경은 미국의 기후 정책 후퇴다. 2025년 1월 출범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파리기후협정 탈퇴를 지시하고 전임 정부의 기후 조치를 폐지·재검토하게 했다. 환경보호청은 2009년 '온실가스 위해성 판단'의 폐기를 추진했고, 에너지부는 기후 모형이 온난화를 과장한다는 보고서를 냈다. 기후변화 자체는 부정하지 않으면서 대응을 늦추려는 이런 주장을 '기후 대응 지연 담론'이라 부른다.

AP통신: 증거로 정부 보고서를 검증하다

AP는 정부와 과학계 주장을 대등한 두 견해로 다루지 않았다. 에너지부 보고서에 인용된 연구자를 포함해 과학자 약 350명에게 검토를 요청했고, 응답자 64명 중 53명이 보고서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15명은 자기 연구가 오용되거나 맥락에서 떨어져 인용됐다고 밝혔다. 북극 해빙 설명에 남극 자료를 쓴 오류도 원자료로 확인했다. 발언 분량의 균형이 아니라 증거의 질로 사실을 가린 보도다.

로이터: 사라지는 데이터를 추적하다

인사이드클라이밋뉴스는 연방정부 웹사이트에서 기후 자료가 삭제되는 과정을 추적했다. 로이터는 하버드 법학도서관이 정부가 내린 데이터 세트 30만 개 이상을 보존한 사실을 보도했다. 무엇이 발표됐는지뿐 아니라 무엇이 지워졌고 누가 이익을 보는지도 언론의 검증 대상이다. 

가디언 기후 약속 2025/ 출처 가디언

가디언: 언어·사진·경영을 함께 바꾸다

가디언은 2019년 스타일 가이드를 개정해 '기후변화' 대신 '기후 위기', '지구온난화' 대신 '지구 가열화'를 우선 쓰도록 했다. '기후 회의론자'보다 '기후 과학 부정론자'라는 표현을 권했다. 사진도 북극곰·빙하 같은 상징 대신 피해를 겪는 사람과 지역, 책임 주체, 해법을 찾는 사람을 보여주도록 바꿨다.

2020년부터는 화석연료 채굴 기업 광고를 받지 않는다. 2025년 9월에는 보도·운영·광고·투자를 아우르는 '가디언 기후 약속 2025'를 발표했다. 핵심은 기후 대응 후퇴와 로비 추적, 해결책의 효과와 한계 검증, 장기 기후 지표 제공, 2030년까지 자사 배출량 67% 감축(2020년 대비), 화석연료 광고 거부, 배출량과 외부 평가 공개다. 언론이 남에게 요구하는 책임성을 자기 경영에도 적용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 부서를 합치고 데이터와 AI를 쓰다

워싱턴포스트는 2025년 4월 기후·환경팀에 기술·비즈니스·보건·과학을 묶어 '퓨처스' 부서를 만들었다. 기후가 일자리·경제·건강·일상에 미치는 영향을 여러 분야가 함께 다루기 위해서다. 지도·위성사진·3차원 모형을 활용하는 '클라이밋랩', 생활 밀착 코너 '클라이밋 코치', 기존 기사를 바탕으로 독자 질문에 답하는 AI 서비스 '클라이밋 앤서스'도 운영한다. 데이터·시각 담당자는 그래프를 덧붙이는 역할이 아니라 취재 기획 단계부터 참여해야 한다.

커버링클라이밋나우: 기후는 모든 분야의 뉴스

국제 협력 네트워크 커버링클라이밋나우는 '기후는 모든 취재 분야의 뉴스'라는 원칙을 내세운다. 정치 기자는 공약의 감축 효과와 비용을, 경제 기자는 산업 전환의 득실을, 지역 기자는 침수 위험·보험료·주민 건강을 취재해야 한다. 2023년 2월 발표한 13가지 '기후 저널리즘 모범 실무 원칙'은 독자 이해, 기후 연관성 설명, 기후정의, 쉬운 과학 설명, 해결책 검증, 그린워싱 경계, 권력자 프레임 검증, 부정론자에게 발언대 주지 않기, 신중한 사진 선택, 기자 트라우마 관리 등을 담았다.

클라이밋 센트럴: 지역 데이터로 체감시키다

비영리 기관 클라이밋 센트럴은 언론에 지역별 기후 데이터를 제공한다. '기후변화지수(Climate Shift Index)'는 특정 지역의 하루 기온에 기후변화가 얼마나 작용했는지 보여준다. 해수면 상승, 도시 열섬, 폭염 자료도 제공해 기후 위기를 독자가 사는 동네의 문제로 바꿔 보여준다.

BBC·AFP·로이터: 허위 균형을 버리고 허위 정보를 검증하다

BBC는 2018년 내부 지침에서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는 확립된 과학이므로 형식적 균형을 위해 부정론자를 등장시킬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AFP는 온라인 과정 '기후 주장 검증하기'로 선택적 통계, 맥락 잃은 인용, 그린워싱, 조작된 사진·영상을 가려내는 법을 가르친다. 로이터 팩트체크는 소셜미디어 주장의 출처와 확산 경로를 추적하고 원자료와 전문가 설명으로 판정한 뒤 근거를 공개한다.

솔루션 저널리즘과 한국 언론의 과제

로이터 저널리즘연구소 8개국 조사에서 최근 일주일 사이 기후 뉴스를 접했다는 응답은 2023년 55%에서 2025년 47%로 줄었다. 독자는 쉬운 설명과 일상에 유용한 정보를 원한다. 대안은 솔루션 저널리즘이다. 성공 사례 홍보가 아니라 해결책의 효과와 비용, 한계를 증거로 확인하는 보도다.

하 교수는 한국 언론에 기후 전문기자와 전담 데스크의 안정적 운영, 모든 부서의 기후 취재 참여, 데이터·사진·팩트체크 인력의 초기 참여를 제안한다. 정부와 기업 발표는 수치의 산정 기준과 빠진 정보, 이해관계까지 확인하고, '친환경'과 '탄소중립'이 실제 감축 없이 이미지 관리에 쓰이는지도 검증해야 한다. 기후 보도는 특정 정책 지지가 아니라 확인된 과학을 전하고 권력의 주장을 검증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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