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공 출신 브라질 대통령 룰라가 10월 25일 대선 결선에서 51.8%를 얻어 48.2%에 그친 보수 성향 플라비오 보우소나루 상원의원을 이겼다. 3주전 치러진 1차 투표에서는 45.2% 대 47.0%, 약 222만 표 뒤진 2위였다. 결선에서는 거꾸로 443만 표를 앞섰다. 브라질 민주화 이후 1차 투표 2위 후보가 결선에서 이긴 것은 처음이다.
물론 선거 결과는 경제, 지역, 정책 등 수많은 변수의 합이다. 그럼에도 여러 브라질 언론과 연구자들은 결선 3주 동안의 디지털 전략 전환을 핵심 요인 중 하나로 꼽는다. 이 글은 정치적 평가가 아니라, 짧은 시간 안에 여론을 뒤집어야 하는 홍보인의 관점에서 그 전환을 뜯어본다.

패배 다음 날, 문제를 인정하는 것부터
전환의 출발점은 빠른 자기 진단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1차 투표 직후 캠프는 위기 대응 위원회를 꾸렸고, 다음 날부터 새 메시지 전략을 논의했다. 내부 이견은 많았지만 한 가지에는 합의했다. "1차는 공약, 2차는 상대 공격"이라는 관성적 공식에 갇혀 바이럴 포맷을 가볍게 여긴 것이 실수였다는 점이다.
조직도 바뀌었다. 커뮤니케이션 총괄을 새로 임명하고, 인스타그램·유튜브·틱톡·왔츠앱에서 영향력이 큰 진보 인사들을 브라질리아로 긴급 소집했다. 그중에는 득표의 90%를 디지털 활동 덕분으로 돌리는 21세 당선인 아나 엘리사 의원도 있었다.
홍보인에게 떠오르는 교훈은 단순하다. 성과가 나쁘면 메시지보다 매체와 형식을 먼저 의심해야 한다. 그리고 그 매체를 이미 잘 쓰는 사람을 의사결정 테이블에 앉혀야 한다.
전략 1. 대표자가 직접 든 스마트폰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80세 대통령의 셀피 영상이었다. 룰라는 휴대전화와 SNS를 멀리하는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 그가 10월 8일 처음으로 직접 촬영한 듯한 아마추어풍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유권자에게 거리로 나가 사람들과 이야기하자고 권하는 짧은 영상이었다.
이후 10월 12일까지 불과 나흘여 만에 노동권, 주 6일 근무제 폐지 개헌안, 거리 집회 등을 다룬 셀피 영상 약 20편이 이어졌다. 30초짜리 집회 소집 영상은 지지자들의 구호를 대통령이 직접 외치는 장면으로 끝났다. 운동하거나 대통령궁 경사로를 달리는 영상도 올라왔다. 고령 논란을 '활력' 메시지로 정면 돌파한 셈이다.
상징적인 장면은 10월 21일에 나왔다. 80세의 룰라가 캠프 커뮤니케이션 총괄인 하파엘 폰텔리스 피아우이 주지사와 자노네스 의원에게서 삼성 갤럭시 S26 울트라를 선물받은 것이다. 그는 평생 휴대전화를 가져본 적이 없다며, 다음 날부터 휴대전화를 쓰고 '룰라의 군대'에 합류하겠다고 말했다. 채널 구독자가 500만 명을 넘으면 휴대전화를 쓰겠다던 약속을 지킨 셈이다. 로이터도 전직 보좌관 두 명을 인용해 이것이 그의 첫 스마트폰이라고 전했다.
다만 며칠 뒤 자노네스가 공개한 사진 속 룰라는 삼성이 아닌 아이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실제로 어떤 기기를 얼마나 쓰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홍보 관점에서 보면 '80세 대통령의 첫 스마트폰'은 사용 여부와 별개로 그 자체가 디지털 전환을 상징하는 이벤트였다.
흥미로운 점은 룰라 본인이 새 포맷에 100% 끌려가길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익숙한 대중 연설 방식과 새 콘텐츠 문법 사이의 균형을 주문했다. 아나 엘리사 의원도 "하루 종일 영상을 찍으라는 게 아니라 하루 한두 번 사람들과 대화하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 홍보에 옮기면 이렇다. CEO의 진정성은 화려한 제작물보다 본인이 직접 말하는 거친 영상에서 더 잘 전달된다. 다만 대표자의 원래 화법을 버리게 해서는 오래가지 못한다. 형식은 바꾸되 목소리는 그대로 두는 것이 핵심이다.
전략 2. 보이지 않는 채널, 왓츠앱 '룰라의 군대'
전문가들이 가장 많이 꼽은 결정타는 공개 SNS가 아니라 닫힌 메신저였다. 앙드레 자노네스 하원의원이 운영한 왓츠앱 채널 '룰라의 군대(Exército do Lula)'는 10월 11일 약 340만 명, 10월 20일 약 500만 명을 거쳐 선거 무렵 1,000만 명을 넘어섰다. 10월 20일 기준 상대 진영의 왓츠앱 채널 '플라비오 부대'는 200만 명 수준이었다.
이 채널은 단순한 공지판이 아니었다. 구독자에게 '미션'을 주고, 각자가 가족·지인 단톡방과 자기 SNS로 같은 주제의 콘텐츠를 동시에 퍼뜨리게 했다. 데이터 분석업체 다트릭스는 이를 '보이지 않는 전략'이라 불렀다. 닫힌 그룹이라 외부에서 추적하기 어렵지만, 수백만 명의 마이크로 인플루언스를 한 방향으로 묶어낸다는 뜻이다. 다트릭스는 효율의 기준이 콘텐츠의 양에서 '대표자와 상호작용하는 사람의 수'로 옮겨갔다고 진단했다.
규제 공방이 오히려 채널을 키운 장면도 있다. 10월 11일 선거고등법원장이 상대 진영 요청을 받아 허위정보 유포를 이유로 채널 정지를 명령했고, 약 4시간 만에 선거고등법원 감찰관이 이를 임시로 뒤집었고, 최종 판단은 전원재판부로 넘어갔다. 다트릭스 분석에서 이 사건 관련 게시물 중 '검열'이라는 프레임이 '허위정보' 프레임보다 세 배 가까이 많았다. 다만 이 채널이 상대 후보에 대한 부정 검색어 띄우기를 독려했다는 보도도 있어, 방법론 자체는 논쟁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기업 PR에 주는 함의는 두 가지다. 첫째, 공개 피드의 도달률보다 팬과 임직원, 고객 커뮤니티 같은 '소유한 닫힌 채널'의 결속이 결정적 순간에 더 큰 힘을 낸다. 한국으로 치면 카카오톡 채널이나 오픈채팅, 커뮤니티가 그 자리다. 둘째, 이런 채널은 우리 쪽에서도 상대 쪽에서도 모니터링이 어렵다. 여론 분석이 공개 SNS와 기사에만 머물면 실제 흐름을 놓칠 수 있다.
전략 3. 셀럽 한 번보다 '번역자' 여럿
셀럽 동원 규모는 컸다. 아니타, 이베치 상갈루 등 가수부터 영화감독, 작가까지 200명 넘는 유명인이 지지 영상을 올렸고, 이들의 팔로워를 합치면 4억 명이 넘었다. 1차 투표 직후 사흘 만에 룰라의 하루 SNS 상호작용은 990만 건으로, 9월 중순 이후 두 후보를 통틀어 최고치를 찍었다.
그러나 다트릭스의 평가는 냉정했다. 셀럽이 한 번 지지를 밝히면 이틀짜리 헤드라인은 되지만, 유권자를 움직이려면 지속적인 존재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더 큰 효과는 대표자 본인의 계정에서 나왔다. 셀피 영상과 젊은 정치인들의 협업이 늘자 룰라 계정이 하루에 얻는 팔로워 수가 상대보다 많아졌다.
여기서 눈여겨볼 존재는 20대 초반의 아나 엘리사 같은 신진 의원들이다. 한 정치 마케팅 연구자는 아나 엘리사를 구세대 정치와 2000년대생 사이의 중재자로 봤다. 디지털 문법이 몸에 밴 사람이 대표자 옆에 서서 형식을 '번역'해 준 것이다.
기업에 적용하면, 단발성 셀럽 광고보다 꾸준히 함께하는 앰배서더와 사내 콘텐츠 인재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경영진의 메시지를 젊은 채널 문법으로 바꿔줄 내부 번역자를 키워야 한다.
전략 4. 화면 밖으로 끌어낸 참여
온라인 캠페인은 반드시 오프라인 행동으로 연결되도록 설계됐다. 첫 결선 집회는 10월 9일 브라질리아 외곽 세일란지아에서 열렸는데, 하루 전 SNS에 올린 30초 영상으로 소집됐다. 상대 진영의 상징적 인물이 자란 지역을 골라 보수 성향 복음주의 유권자에게 손을 내민 장소 선택이기도 했다.
10월 11일 상파울루 파울리스타 대로 집회도 셀피 영상으로 소집됐고, 7개 블록을 메웠다. 학생, 축구 응원단, 그리고 해외 팝스타 팬덤까지 참여했다. 동시에 젊은 의원들은 다른 지역에서 분산 행사를 열었다. 공통 목표는 1차에 투표하지 않은 약 3,300만 명이었다.
결과적으로 결선 기권율은 1.86%p 낮아져 약 296만 명이 더 투표했다. 두 후보가 결선에서 새로 얻은 표의 74%가 룰라에게 갔다. 소셜 캠페인의 성과 지표가 '좋아요'가 아니라 실제 행동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기업 캠페인도 마찬가지다. 조회수와 참여율에서 멈추지 말고 방문, 구매, 서명, 참석 같은 실제 전환을 목표로 콘텐츠를 설계해야 한다. 그리고 '아직 움직이지 않은 사람'을 별도의 타깃으로 정의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전략 5. 생활 이슈로 좁힌 대비 프레임, 그리고 그 논란
메시지는 더 짧고 더 날카로워졌다. 10월 8일 캠프 회의에서 상대 후보의 이미지를 군더더기 없이, 토론보다 공유에 맞춘 형식으로 해체하기로 정했다. 캠프 안에서는 "이제 개인 대 개인"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자기 이미지보다 상대와의 대비에 무게를 둔다는 뜻이다.
대비의 소재는 추상적 가치가 아니라 생활 이슈였다. 주 6일 근무제 폐지 개헌안을 앞세우고, 상대 후보를 사회복지 프로그램 축소와 연결하는 메시지를 반복했다. 2022년의 '증오를 이기자', '사랑이 이긴다' 같은 슬로건은 캠프 안에서 지금 맥락에서 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전략이 감정을 크게 움직였다는 데에는 양쪽 모두 동의한다. 펠로타스 연방대 연구자 라켈 헤쿠에루는 상대 후보 당선에 대한 두려움이 동원의 원동력이었다고 분석했다. 반면 상대 진영 정치인은 이를 '선거 공포 조장'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현상을 두고 해석이 갈린 셈이다.
홍보인이 가져갈 부분은 기법이지 수위가 아니다. 거창한 가치보다 수용자의 생활에 닿는 구체적 이슈 하나로 메시지를 좁히는 것은 기업 커뮤니케이션에도 유효하다. 그러나 경쟁사 비방이나 공포 소구는 기업에서는 법적·평판 리스크가 훨씬 크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소셜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들
역전을 소셜 마케팅의 공으로만 돌리는 것은 과장이다. 현직 정부는 결선을 앞두고 청년, 소상공인, 노동자를 겨냥한 새 정책 패키지를 내놓았다. 1차 때와 달리 TV 토론에도 두 차례 참여했다.
지역 효과도 컸다. 개표 초반에는 상대 후보가 앞섰고, 북동부 개표가 들어오면서 승부가 뒤집혔다. 룰라는 27개 모든 주에서 득표를 늘렸지만, 핵심은 전통 지지 기반의 투표율 회복이었다.
홍보담당자를 위한 일곱 가지 시사점
룰라 캠프의 3주는 위기에서 커뮤니케이션을 다시 짜는 압축판 교과서였다. 선거와 기업 PR은 다르지만, 다음 원칙은 그대로 옮겨 쓸 수 있다.
1. 진단은 48시간 안에. 나쁜 결과가 나오면 메시지보다 매체와 형식을 먼저 점검하고, 그 매체를 잘 아는 사람을 즉시 의사결정에 넣는다.
2. 대표자가 직접 말하게 하라. 다듬은 영상보다 CEO가 직접 찍은 짧은 영상이 신뢰를 만든다. 단, 대표자 본래의 화법은 지킨다.
3. 소유한 닫힌 채널을 키워라. 공개 피드 도달률보다 임직원, 팬, 고객 커뮤니티의 결속이 결정적 순간에 힘을 낸다. 평소에 '미션'을 줄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 둔다.
4. 단발 셀럽보다 꾸준한 목소리. 한 번의 지지 선언은 이틀짜리 뉴스다. 지속적으로 함께하는 앰배서더와 내부 콘텐츠 인재에 투자한다.
5. '아직 움직이지 않은 사람'을 타깃으로. 이미 지지하는 층의 열기보다 침묵하는 층을 행동으로 옮기는 설계가 판을 바꾼다.
6. 지표는 행동으로. 조회수가 아니라 방문, 참석, 구매 같은 전환을 목표 지표로 잡는다.
7. 보이지 않는 여론을 놓치지 마라. 메신저와 비공개 커뮤니티는 모니터링이 어렵다. 공개 SNS와 기사 분석만으로는 실제 흐름을 놓칠 수 있다는 전제로 여론을 읽는다.
마지막으로 주의할 점이 있다. 공포 소구, 상대 비방, 조직적 검색어 조작 같은 수법은 기업 환경에서 법적·평판 리스크가 크다. 한국에서 선거 관련 업무를 맡는다면 공직선거법상 SNS·메신저 활용 규정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